[크툴루의 부름] Calling
2023. 6. 15. 16:49
2021/02/24 01:06
[크툴루의 부름] Calling 티알피지

룰 : 크툴루의 부름 7판 / 장소 : Roll20 / 플레이 타임 : 2021.2.21 11:00-23:00
KP.아본님 / PL.녹차파우더님, 에이미님, 니레
“네 차에 독을 탔어.”
저는 티알피지를 2019년 7월에 인세인으로 처음 입문을 하고, 같은 달에 현재에도 주력으로 플레이중인 마기카로기아를 아본님의 뉴욕3부작 마스터링으로 입문했었습니다. 그 이후 어언 1년 반도 더 지난 2021년 2월, 여전히 제가 흠모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꺼트린 적 없는 아본님께서 드물게 크툴루의 부름 구인을 하신다기에 마침 날짜가 비었던 저는 망설일 이유를 더 찾지 못하고 냉큼 뻔뻔하게 탑승을 해버렸지요.
저는 평소 크툴루의 부름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중간과정이 어찌됐든 이제 크부름은 소위 ‘범용룰’로써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시도를 하는 여러 시나리오가 나왔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봤지만, 거두절미하고 제게 이 룰을 좋아할 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로 다가왔던 지점은 수호자와 탐사자에게 각각 나눠진 권력의 불균형이었어요. 이 룰은 모든 것이 수호자가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고, 수호자가 컨트롤을 하는 권한이 강한 것은 세 명 이상의 플레이어를 수호자가 보여주는 이야기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제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1:3 이상을 할 수 있는 룰인 거예요.
그런 룰이 1:1이 되었을 때, 강약은 다를지언정 저는 결코 낮지 않은 빈도로 불편한 경험을 해야만 했습니다. 늘 말하는 거지만 다양한 시도를 하는 동인 시나리오에서는 룰제작자의 의도와 시나리오라이터의 의도가 상충될 수도 있을뿐더러 시나리오의 의도와 수호자의 의도와 탐사자의 의도가 맞부딪힐 때가 많아서, 정보를 찾느라 뺑이를 치며 개고생을 해야 하거나(시티계) 상황에 대한 반응만 보이거나(레일로드계) 하다가 어영부영 세션이 끝났던 때가 많았지요. 그렇다고 탐사자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니 이야기의 완급이 이상해지기도 했고… 하여간 여러모로 제겐 아직도 낯설고 친해지고 싶지 않은 룰이 크부름이네요.(어쩐지 코스믹호러에 어울리지 않나?!)
그치만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플레이어가 3명 이상이 되었을 땐 룰이 의도하는 바(키퍼에게 권한 집중)가 아무튼 이루어지고, 3명 이상일 때 할만한 것을 시나리오에서 쓰려면 결국 신화생물 탐사밖에 없기 때문에 시나리오의 의도하는 바도, 수호자와 탐사자의 역할도 전부 맞게 되어서, 이번에 탐험한 <콜링>같은 ‘신화생물의 강림을 저지하는 고전적인 시나리오’에선 서로의 의도를 파악한다는 코스트가 크게 들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세션이 재미가 있을 거라는 건 이미 보장되어 있었단 뜻입니다.
***
아본님 : 도시의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나한테 시키면 아비꼬시 같은 걸로 할거다!
일동 : ? 그럴싸한데? 좋다! 카레가 특산인 도시로군!
아본님 : ? 그런가보다(?
그렇게 아비코무라->아비코 시가 된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탐사자들은 의문스러운 전화 수신음의 환청을 계속해서 듣다가 결국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익명의 전화를 받아 ‘덴츠 터널’에 집합하게 되는 것으로 <콜링>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탐사자들은 이 친구들이에요.(녹차님 스샷 훔쳐옴)
왼쪽부터 차례로 히라이 슌(pl 녹차파우더님), 사사키 히바리(pl 에이미님), 후지타 쿄헤이(pl 니레)로, 히라이는 아비코 시 토박이인 기계공학과 대학생(특 : 닌자 오타쿠), 사사키는 지방으로 단기발령난 경찰(특 : 아이돌 하나나짱 오시), 후지타는 평범한 고등학생(특 : 야구빠따를 들고 다니는 아싸)이었습니다.
니레 : 사사키는 하와이 출신이란 걸 본 것 같은데 하와이 출신이면 미국시민권이 있나?
에이미님 : 그럴것이다 물론 일본경찰에게 그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지는 모른다
녹차님 : 히라이는 닌자오타쿠라 소지품에 수리검이 있지만 모형이니까 괜찮다
아본님 : 수리검은 투척성공하면 대미지1이다
녹차님 : 안돼!(굿즈꽉쥠)
니레 : oO(후지타가 제일 평범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후지타가 불량소년이 된 이유는 별 거 없고(?) 캐메 주사위를 굴렸을 때 그나마 능력치가 나았던 게 교육 45여서… 보니까 중졸의 교육수준이라길래 뭐 중졸자가 아니라 고등학교 재학중으로 하면 되겠지 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태어난 아이였죠. 그 외의 능력치는 정말 다 평범한 수준이어서, 후드도 써주고 눈초리도 나쁘고 야구빠따도 들려주고(훌륭한 둔기), 평범한 아이니까 능력치는 대충 높아도 50~60 수준으로 찍어두었죠. 원래 탐사라는 게 높은 능력치 하나 찍어서 그거로 다 밀기보다는 어중간한 능력치로 두뇌풀가동해서 여러번 비벼보는 게 재미있는 거 아니겠어요. 여튼 캐릭터는 러프한 컨셉 정도만 잡아보고 나머지는 세션에서 만들어가자! 고 생각했고 그것은 역시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잘했다 과거의 나! 혹시 천재 티알피저?!(미쳐감
녹차파우더님과 에이미님은 같세를 처음 해보았는데요. 뉴욕캠을 하면서 세션이 끝나고 후담을 나눌 때, 그리고 아본님이 타임라인에 종종 올리시는 후기에 자주 오르는 닉네임이 이 두 분이셨어요. 그래서 이미 두 분이 갓플레이어시라는 건 알고 있었고... 제가 위에서 그랬지요. 아본님의 뉴욕캠 마스터링으로 마기로기에 입문해서 지금까지 마기로기를 하고 있다고. 그런 만큼 아본님의 마스터링은 제게 있어 언제나 이상향이자 정점이었고 제 플레이의 근간을 만들어주신 것이 아본님과의 세션경험과 마스터링에서의 교도였습니다. 그런 아본님과 같세를 자주 하시는 두 분이어서일까? 초면이지만 어쩐지 영혼이 비슷하게 느껴져(feat.에이미님)(?)... 바이오리듬이 비슷한거같아(???)...!!!! 처음부터 큰 조율이 필요 없었고 그래서 적절한 매너를 지키며 플레이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죠(라고저혼자생각햇습니다)
아니 근데… 휴우…
도입부부터 미치도록 재미있다.

아니 이게 뭐지… 뭐지?
저는 정말 놀라고 말았지요… 캐릭터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할 수 있으리라 이미 생각은 했지만... 사관학교 나온 경찰과 닌자오타쿠 공대생과 불량소년 고교생 셋이 만나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쉽게 예상하기 힘들잖아요. 저도 이제 티알을 150번 정도 해봤고 다인coc라는 건 탐사하느라 바빠서 비즈니스가 되기 쉽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그런데 정말 이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엄청난 케미의 향연이었습니다. 어색한 우당탕탕으로 시작한 것 같은데 우당탕탕이 재미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 그러면서도 뭔가 크부름에서 처음 느끼는 맛…! 뭐지?! 우당탕탕을 했을뿐인데 맛있어! 그래! 도시 이름부터 아비꼬였다고! 맛있는게 당연했어!(?
‘심상이 맞는다’라는 것은 뭘까요. 결국 캐치볼을 하면서 던지고 받고 그 공의 궤적을 예상할 수 있고 거기에 그 공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같은 물리법칙을 공유한다는 말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같은 물리법칙을 공유하기에 예상 못한 공이 날아와도 즐겁게 웃으며 바로 받아칠 수 있는 안전한 놀이를 하게 된다는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녹차님과 에이미님의 플레이는 그런 안정감이 기저에 깔린 위트가 있었고 저는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후우 아본님... 진짜 두 분을 아본님만 독점하고 계셨다니 부들부들;;(어이) 캐릭터의 강렬한 컨셉으로 자연스러운 진행을, 모난 데 없는 성격으로 강렬한 펀치라인을 만드시는 그 지점들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굉장한 진미였어요. 1절뿐인 컴팩트한 플레이로 가장 맛있는 지점을 만드시는 그 능수능란한 플레이에 저는 그만(ry 아아… 초면인데도 또 같세 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드는 분들을 만나는 게 이제는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저는 알고 있고 그래서 이 경험에 굉장히 감사하고 있답니다. 흑흑 너무 좋아 너무 재밌어요 쑈씨라는 게 이렇게 재밌는 룰이었나 싶을 정도로 서로 엮어서 자아내는 장면들이 너무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제가 세션에서 얻은 경험의 무게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장면을 자아내는 실의 한가닥이라도 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아본님께서 제게 티알의 즐거움을 먹여주신 덕분이지요…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본님의 마스터링은 언제나 제게 있어 이상향이자 정점이고 제 안의 가장 빛나는 별이에요. 실시간 감상 타래에도 썼지만 : 아본님은 캐릭터들이 우왕좌왕 하고 있어도, 그 우왕좌왕까지 유의미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적절하게 사건으로 이끌어주시는, 서사를 진행하고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힘이 굉장히 유려하시거든요. 문외한의 눈에도 대단하다는 인상이었지만 마지막으로 같세한지 1년이 지나고 제가 좀 티알머리가 커진(?) 지금 봐도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는 정말 갓-마스터… 아니 제길 생각해보니 아본님께 맨날 염치없이 마스터링만 받았어… 흑흑… 하지만 스스로가 염치없더라도 기회를 잡아버리고 마는 것이 그런 아본님의 갓마스터링이니까요… 다들 뭔지 아시죠(?) 게다가 심지어 이게 첫 키퍼링…
첫 키퍼링이시라구요????? 세상에… 저 약간 지금 스포츠 소년만화에서 압도적인 천재를 보고 좌절하는 감정 뭔지 조금 이해한 기분이고(...) 시티형 다인시날 키퍼링은 이렇게 해야만 하는구나 하는 그런 감동까지 느껴버렸다네요… 중간중간 ‘정보를 그냥 줘버리고 있는데 괜찮을까?’ 라고 떨떠름해하셨던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 에이미님께서도 말씀하신 ‘정보를 팍팍 주면서도 어그로로 플레이어들을 살살 긁어야 하는데 완벽한 밸런싱’ 그 자체였구요. 저는 시티계를 잘 플레이하지는 않는데요, 시티계에서 뭔가가 진행이 되는 그 감각이 정말 너무 귀중했고 고양감 느껴지는 마스터링이었어요. 흐아. 역시 아본님은 멋져!;ㅁ;
그렇게 ‘뭔가 진행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팍팍 앞으로 나아가면서 매 장면마다 장면표처럼 나오는 핸드폰의 끔찍한 광경들, 그 장면이 흔들어 깎아내는 캐릭터들의 산치, 산치가 까일때마다 캐릭터를 아끼지 않고 내던지는 플레이어들, 그렇게 내던져져 정신적인 맨살이 부딪히고 서로에 대한 강한 감정을 획득해내는 캐릭터들… 제일 막내인 후지타에게 위기가 찾아올때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사키와 히라이...
녹차님(롤플중) : 후지타의 핸드폰을 빼앗아 뒤로 숨기겠다(산체크(실패
에이미님(후담중) : 후지타의 지문을 닦을 때 대신 사사키의 지문을 찍어놨다
아아아아아 다들!
무슨 짓이에요!!
날 미치게 할 셈이에요?!?!?!
이럴수가 사사키도 히라이도 다들 아직 어린데(!) 다들 어른이야 인격자야 사람 광공 만들어
“하 미치겠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덕분에… 덕분에 저는 정말 사양않고 마음껏 응석부리고 마음껏 주저하고 마음껏 캐릭터의 마음을 열어보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건 두 분도 마찬가지였을까. 같은 위기를 겪고 같은 긴장을 겪고 어설픈 AT필드따위 걷어버리고 점점 마음을 열어가다보니 어느새 캐릭터들끼리, 만난지 사흘밖에 안된 애들끼리 서로를 위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가까워졌던 것 같네요. 이런 경험마저 완전 처음이야…(털썩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그 어느것도 세상을 뒤흔들만한 능력이 없는 탐사자들이(=90이상인 능력치가 하나도 없다는 뜻), 자그마한 근접전과(ㅋㅋ) 자그마한 민첩과(ㅋㅋㅋㅋ) 자그마한 회피(이건 진짜 자그마햇음)를 가지고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은. 필연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그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처음 만난 누군가를 위해서’라니 저 마법사 하면서도 진심으로 캐가 이런 인격적인 선택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 하아… 처음부터 로스트를 위해 만든 캐릭터를 가지고 최생을 바라게 된다니… 너무 멋지잖아요. 너무 멋진 희망이잖아요.
그런 희망과,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과, 광기에 빠지면서도 내 행운 남의 행운 갚을 수도 없으면서 다 대출해서 처절하게 발버둥치는 그 모든 결과가, 아자토스의 강림이고 전원 로스트라는 것까지, 정말 너무 완벽하잖아요.

"아!!!!!!!!!"
미치겠다… 미치겠어… 마지막에 군지의 핸드폰을 박살내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90대의 실패가 뜨다니… 어쩐지 내내 ‘펌블만 아니면 괜찮다’ 하는 상황에서 펌블이 나고 있는 이 세션… 저는 사실 예상했습니다 실패할 거라고… 근접전 55가지고 비빌 일이 아니었지… 하지만 그래도 걸어보고 싶었어. 아자토스에(?), 니알라토텝에(??), 다이스갓에.

(역시 아무래도 잘생긴놈이 웃기까지 하면 니알라인 편이죠)
하아…(탄식)
그렇게 결정적인 한 끗이 모자라서, 결국 신티크()의 공격을 받고, 모두 쓰러지고, 최후에 탐사자들의 망막에 새겨지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그것만 성공했더라면’
모두 행복한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할 수 있었을텐데, 잃은 것들을 뒤로 하고 같이 절뚝거리며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그것만 성공했더라면’
―라고 안타까워할 수 있는 것, 그렇게 탄식하고 절망할 수 있는 것, 정말 어디 가서 이런 체험을 해볼 수 있을까요. 안타깝고 탄식하고 절망한다는 것은 기쁘고 즐겁고 필사적이었다는 뜻이잖아요. 그리고 이 세션의 모든 참가자는 그 기쁘고 즐겁고 필사적이었기에 맞이한 전원 로스트를 너무 맛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까지…

그러니까, 이미 처음부터 이 세션이 재미가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 예상과 인지를 뛰어넘어 이 세션은.
“네 차에 독을 탔어. 다이스갓...아니 아자토스라는 독을.”
“그럼 어찌 우리가 안 마실 수 있겠어요.”
***
시나리오도 정말 완성도가 높았어요. 물론 시날 원본을 보고 나니 그걸 엮어서 보여주신 아본님이 가장 갓갓갓이셨다는 느낌이지만... 아무래도 크부름이란 룰 자체가 키퍼와 플레이어들의 상식적인 면에 많이 기대는 룰이다보니 ‘여긴 밤에 가면 위험하겠다’ 아니면 ‘여긴 밤에 가야 수색이 쉽겠다’ 라는 그런 것들이 자연스레 연상이 되고 거기에 맞춰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깔려있는 덕에 내용을 소화하는데도 전혀 무리가 없는, 고전명작이란 칭호에 어울리는 멋진 시나리오였습니다. 하…
너무좋다...